▲ 울산 고려아연과 치열한 혈투 끝에 극적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원익
원익이 창단 4년 만에 감격적인 첫 우승을 차지했다. 29일(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원익이 울산 고려아연의 끈질긴 추격을 3-2로 따돌리고, 챔프전 성적 2-1로 정상에 올랐다. 이원영·이지현의 초반 연승에 박정환이 극적인 결승점으로 화답했다.
▲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64번째 경기가 막을 올렸다.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할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1차전 승리 팀 84.2% vs. 정규리그 1위 팀 71.4%
챔피언 결정전 1차전을 승리한 원익의 첫 우승이냐,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친 울산 고려아연의 두 번째 우승이냐. 1차전을 이긴 팀의 우승 확률 84.2%와 정규리그 1위 팀의 우승 확률 71.4%가 충돌했다. 더 이상 뒤가 없는 마지막 승부다.
1국 원익 이원영(3지명) vs 울산 고려아연 안성준(1지명)
이원영, 267수 흑 불계승. 원익 1-0 울산 고려아연
울산 고려아연 박승화 감독은 정규리그에서 8차례나 1국에 나섰던 주장 안성준을 최종전 선발 주자로 낙점했다. 오더를 밤새 고민했다는 원익 이희성 감독은 의외로 이원영에게 선봉 중책을 맡겼다. 두 선수의 맞대결 전적은 안성준이 6승 4패로 근소한 우위.
안성준이 준비된 행마로 초반부터 리드를 잡았다. 중앙 전투에서 약간 손해를 입었지만 상변 흑돌을 가두고 파상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 위기를 느낀 이원영이 변화를 구하자 안성준이 흔들렸다. 역공에 성공한 이원영이 백돌을 수중에 넣자, 순식간에 15집까지 차이가 벌어졌다. 안성준이 추격했지만 5집 안팎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원영의 선제점으로 원익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 1·2차전 연패로 자존심을 구겼던 이원영(원익)이 챔피언 결정전 첫 승리를 신고했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당이페이(영림프라임창호)를 꺾은 데 이어 챔피언 결정전 최종전에서도 귀중한 선제점을 보탰다.
2국 원익 이지현(2지명) vs 울산 고려아연 송규상(4지명)
이지현, 160수 백 불계승. 원익 2-0 울산 고려아연
2국에서 울산 고려아연 송규상과 원익 이지현이 맞붙었다. 1차전 3국, 2차전 1국에 이어 사흘 연속 마주 앉았다. 전날까지 1승 1패를 주고받은 두 선수의 기묘한 3번기, 오늘이 결승판이다.
전날 승자 인터뷰에서 최종전의 기적을 바란다고 했던 송규상. 믿었던 주장의 실족으로 부담이 컸던 탓일까. 초반부터 무거운 행마로 대마가 횡사하고 말았다. 반대급부로 최대한 키운 우변 흑 모양에 이지현이 침투했다. 전부 잡아야 승부를 기약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국면. 이지현이 어렵지 않게 타개에 성공하자 송규상이 돌을 거뒀다. 2-0으로 앞선 원익이 우승을 눈앞에 뒀다.
▲ “장기간 슬럼프로 오늘 대국 전에도 불안감이 컸는데, 감독님이 용기를 북돋아 주신 점이 도움이 됐다. 감독님과 원익 관계자에게 감사하다”며 우승 소감을 밝힌 이지현(원익)
3국 울산 고려아연 랴오위안허(후보) vs 원익 김은지(4지명)
랴오위안허, 236수 백 불계승. 울산 고려아연 1-2 원익
일찌감치 벼랑 끝에 몰린 울산 고려아연은 랴오위안허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 원익은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외국인 선수와의 대국을 원했던 김은지 카드를 제출했다.
하변 축머리를 둘러싼 미묘한 공방전 끝에 김은지가 선제 득점을 올렸다. 불리한 국면을 의식한 랴오위안허가 상변에서 흑돌의 약점을 추궁하며 전단을 구했다. 침착하게 응수하던 김은지에게 치명적인 실수가 나오며 상변에서 큰 실리를 허용했다. 전세를 뒤집은 랴오위안허가 여유 있게 3국을 마무리했다. 울산 고려아연이 추격을 시작했다.
▲ 김은지(원익)의 실수로 승기를 잡자 생각시간을 11분이나 누적하며 여유 있게 마무리한 랴오위안허(울산 고려아연). 포스트시즌 3전 전승 등 최종 성적 6승 1패.
4국 울산 고려아연 최재영(2지명) vs 원익 진위청(후보)
최재영, 259수 흑 3.5집승. 울산 고려아연 2-2 원익
특급 용병이 급한 불을 껐지만 울산 고려아연은 여전히 뒤가 없다. 챔피언 결정전 2승을 포함해 최근 전체 기전 9연승을 질주하고 있는 최재영이 출격했다. 원익은 진위청이 우승 축포를 터트리기 위해 나섰다.
좌변에서 진위청의 응수타진에 최재영이 반발하며 팽팽하던 균형이 무너졌다. 진위청은 유리한 형세를 잡으면 절대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시즌 내내 보여줬다. 그러나 우승 결정판이라는 중압감 탓인지 형세를 낙관하며 이상 감각이 나왔다. 최재영이 하중앙에 보가를 구축하며 전세를 뒤집었다. 후반이 강한 진위청을 상대로 최재영의 극적인 뒤집기. 울산 고려아연이 기적의 불씨를 살렸다.
▲ 진위청(원익)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최재영(울산 고려아연). 챔피언 결정전 3전 3승, 최근 10경기 무패.
5국 원익 박정환(1지명) vs 울산 고려아연 한태희(5지명)
박정환, 296수 흑 8.5집승. 원익 3-2 울산 고려아연
끝내 최종국까지 왔다. 초반 2연승으로 우승 샴페인을 기대했던 원익에게 그나마 다행은 주장 박정환(랭킹 2위)이 남아있다는 점. 울산 고려아연 박승화 감독은 3지명 류민형 대신 5지명 한태희(랭킹 48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둑리그 통산 71승의 베테랑이지만 상대는 통산 최다 189승, 무엇보다 포스트시즌 32승 3패, 91.4% 승률의 박정환이다.
우승상금 2억 5천만원이 걸린 단판 승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시작됐다. 중반 비세를 직감한 한태희가 하변 흑진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초읽기에 몰린 박정환의 실착으로 승부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한태희는 침착했고 박정환은 크게 흔들렸다. 승률 그래프마저 뒤집어졌다. 마지막 승부처가 된 우하귀 패싸움을 이기고 나서야 박정환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피 말리는 최종국의 승자는 원익이었다.
▲ 원익의 우승으로 통산 다섯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린 주장 박정환(원익). 포스트시즌 6전 전승을 포함해 이번 시즌을 15승 5패로 마무리했다.
▲ ‘포스트시즌 포식자’ 박정환(원익)을 상대로 투혼을 발휘한 한태희(울산 고려아연). 종국 후 눈시울이 붉어진 한태희를 박승화 감독이 위로하고 있다.
매 시즌 상위권 성적에도 뒷심 부족을 드러냈던 원익이 마침내 2025-2026시즌 왕좌를 거머쥐었다. 2023-2024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 고려아연에게 당한 패배를 2년 만에 되갚았다. 포스트시즌 전승을 거둔 주장 박정환을 비롯해 이지현·이원영·김은지·강지훈, 그리고 외국인 선수 진위청까지 모든 선수가 고른 활약을 펼쳤다. 우승의 공을 선수들에게 돌린 이희성 감독의 용병술도 빛을 발했다.
정규리그 1위 울산 고려아연은 통합 우승에 실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팀 전력으로 단일 시즌 최다 타이 기록인 10연승을 질주하며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승패와 무관하게 매 경기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록 마지막 승부는 놓쳤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해피엔딩이었다.
개막전부터 챔피언 결정전까지 총 64경기, 283대국.
64경기 중 37경기가 풀세트 접전이었을 만큼 8개 팀이 혈전을 벌였다. 6개월 대장정을 달려온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가 막을 내렸다. 2026-2027시즌은 가을에 다시 돌아온다.
▲ 2국 송규상의 바둑을 홀로 관전하고 있는 랴오위안허(울산 고려아연)
▲ 4국에서 최재영이 강적 진위청(원익)을 제압하자 한껏 밝아진 울산 고려아연 선수단
▲ 2국 이지현의 대국을 함께 검토하고 있는 원익 선수단
▲ 4국 진위청의 패배로 무거운 긴장감이 감도는 원익 검토실
▲ “초반에 바둑이 풀리지 않아 팀에 민폐가 아닐까 걱정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라며 안도감을 드러낸 이원영(오른쪽)과 최종전 승리의 주역 박정환·이지현.
▲ 원익 이희성 감독은 “오랫동안 우승을 염원했다. 좋은 선수들의 노력과 우승에 대한 열망이 오늘의 결과를 낼 수 있었다”며 감격적인 우승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더 제출 직전에 원래 생각했던 진위청에서 컨디션이 좋은 이원영으로 바꿨다”고 1국 오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