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중요한 라운드를 이겨 기쁘다. 남은 경기도 다 이겨서 포스트시즌에 올라가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낸 신민준(왼쪽), "한국 팬들께서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한국을 워낙 좋아해서 올 때마다 행복하다"며 환한 미소를 지은 판인
LG배 우승의 기운이 전해진 것일까. 신민준의 수려한 합천이 단독 선두 원익을 끌어내렸다. 16일(금)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1라운드 2경기에서 수려한 합천이 원익을 3-1로 제압했다.
단독 1위(8승 2패) 원익은 '폭풍 8연승'으로 턱 밑까지 쫓아온 울산 고려아연의 매서운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 반면 6위(4승 6패) 수려한 합천은 LG배를 제패한 주장 신민준의 우승 기세를 포스트시즌 진출까지 잇겠다는 각오다. 서로 다른 과제 속에 피할 수 없는 승부가 시작됐다.
▲ 서건우 심판의 개시 선언으로 원익과 수려한 합천의 중요한 승부가 시작됐다.
1국 수려한 합천 판 인(후보) vs 원익 이지현(2지명)
판 인, 205수 흑 불계승. 수려한 합천 1-0 원익
전반기 맞대결에서 이지현이 불계승을 거둔 데 이어 후반기 리턴 매치. 최근 3연패 부진에 빠져 있는 이지현이 원익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수려한 합천은 9라운드부터 3주 연속 호출을 받은 외국인 선수 판인이 선발로 출격했다.
서로 실리로 맞선 바둑은 이지현이 상대 돌을 끊어가며 험악해졌다. 그러나 돌을 가르며 주도권을 잡은 이지현이 패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완착이 발생했다. 다시 균형을 맞추고 돌입한 중반전, 상변 대마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이지현의 무리한 공격이 이어졌다. 침착하게 타개에 성공한 판인이 승기를 잡으며 전반기 패배를 설욕했다. 선발 용병 카드가 적중한 수려한 합천이 1-0 리드를 잡았다.
▲ 지난 2주 동안 한국에 머물며 어떻게 지냈는지 묻는 질문에 "중국 선수들과 많이 다녔고, 한국기원에서 바둑도 뒀고, 연구실도 다녔다. 한국 선수들과 테니스도 같이 쳤다"며 유창한 한국말로 승자 인터뷰에 응한 판인(수려한 합천)
2국 수려한 합천 신민준(1지명) vs 원익 김은지(4지명)
신민준, 236수 백 불계승. 수려한 합천 2-0 원익
선제점을 올린 수려한 합천은 전날 LG배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린 'LG배 황태자' 신민준(랭킹 4위)을 앞세워 연승을 노렸다. 반격에 나선 원익은 지난해 5개 타이틀을 거머쥔 '바둑 여제' 김은지(랭킹 22위)로 맞불을 놓았다.
화끈한 승부를 예상했던 팬들의 기대와 달리 승부의 추는 일찌감치 기울었다. 좌상귀 백진에 침투한 김은지가 자신의 돌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실리를 허용하며 대세를 그르쳤다. 확실한 승기를 잡은 신민준이 세계 챔피언다운 완벽한 마무리를 선보이며 불계승을 거뒀다. 수려한 합천이 선두 원익을 2-0으로 거세게 몰아붙였다.
▲ 최근 상승세의 김은지(원익)를 가볍게 꺾고 다승 7승 대열에 합류한 LG배 우승자 신민준(수려한 합천)
3국 원익 박정환(1지명) vs 수려한 합천 김승진(3지명)
박정환, 180수 백 불계승. 원익 1-2 수려한 합천
2021년 프로에 입단한 김승진과 다음달 신한은행 세계기선전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박정환의 첫 대결.
1월 랭킹 30위 김승진이 오랜 기간 랭킹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정환을 맞아 자신의 스타일로 꿋꿋하게 맞섰다. 우상귀 블루 스팟을 두고 승률 그래프가 요동치는 가운데, 김승진이 하변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며 비세에 빠졌다. 결국 박정환이 좌변 흑 대마를 포획한 끝에 불계승을 거뒀다. 단독 선두 원익이 뒤늦게 추격을 개시했다.
▲ 김승진(수려한 합천)에게 승리를 거두며 리그 4연승과 함께 전체 기전 14연승을 기록한 박정환(원익)
4국 수려한 합천 김형우(5지명) vs 원익 이원영(3지명)
김형우, 332수 백 3.5집 승. 수려한 합천 3-1 원익
여전히 추격하는 입장의 원익은 3지명 이원영이 나섰다. 수려한 합천 고근태 감독은 2지명 이창석이 아닌, 최하위 지명 김형우 카드를 제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김형우가 좌변에서 흘러나온 흑 대마를 압박하며 국면의 주도권을 쥐었다. 그것도 잠시, 형세를 낙관한 김형우의 완착이 등장하며 이원영이 전세를 뒤집었다. 종반전 김형우가 대마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며 이원영이 그대로 승리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종료 직전 반전이 일어났다. 김형우가 끈질기게 중앙 패싸움을 유도하며 극적으로 재역전에 성공한 것.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명언은 바로 이 바둑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최유진 캐스터의 멘트처럼 무려 1시간 20분 동안 치열한 접전을 펼쳤고, 332수 만에 김형우가 3.5집을 남겼다. 베테랑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수려한 합천이 선두 원익을 3-1로 제압했다.
▲ 6라운드와 9라운드에 이어 11라운드 마무리를 책임진 '엔딩 요정' 김형우(수려한 합천)가 승부수를 띄운 고근태 감독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시즌 성적 4승 3패.
이날 패배로 원익은 5라운드 이후 굳게 지켜온 선두 자리를 울산 고려아연에게 내주고 말았다. 두 팀은 승률(8승 3패), 개인 승패 차(+5)까지 모두 같았으나, 승자승 원칙에 따라 순위가 갈렸다. 한편 선두를 꺾는 파란을 일으킨 수려한 합천은 5위로 올라서며 GS칼텍스와 자리를 맞바꿨다.
17일(토) 11라운드 3경기에서는 4위 한옥마을 전주와 7위 마한의 심장 영암이 격돌한다. 전주는 5지명임에도 6전 전승의 무결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강유택을 선발로 내세웠다. 영암은 9전 전승의 절대 강자 신진서를 앞세워 기선 제압에 나선다. 현재 리그에 둘뿐인 전승자 간의 빅매치로 상대 전적은 신진서가 3승 1무 1패로 우위에 있다.
○●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8개 팀이 더블리그 방식으로 총 14라운드 56경기를 치른다. 정규리그 상위 4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우승 상금 2억 5,000만원을 놓고 최종 대결을 펼친다. 매 경기 5판 3선승제로 진행되며, 기본 시간 1분에 착수할 때마다 15초가 추가되는 피셔 룰 방식이 적용된다.
▲ 팀의 영봉패를 막는 귀중한 승리를 거둔 후 주장 박정환(왼쪽 첫 번째)이 이지현과 함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 '월드 챔피언의 귀환' 2국을 승리한 신민준(오른쪽 첫 번째)이 자신의 바둑을 스마트폰으로 복기하고 있다.